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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눈뜨기

인터넷은 미디어를 바꿨고 블록체인은 금융시스템을 바꾼다

by 남이철이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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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

인터넷은 미디어를 바꿨고

블록체인은 금융시스템을 바꾼다

이토 조이치, 네하 나룰라, 노블레 알리

 

필자 이토 조이치(Joichi Ito) MIT 미디어랩 디렉터이자 미디어예술과학 학과 교수다. 네하 나룰라(Neha Narula) MIT 디지털화폐 이니셔티브의 리서치 디렉터, 로블레 알리(Robleh Ali)는 동기관 연구원이다.

 

터넷이 처음 등장하고 몇 년 후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반짝 지나가는 기술일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우리가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 ‘아랍의 봄’, 2016년 미국 대선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이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암호화 화폐cryptocurrency와 블록체인이 있다. 과연 인터넷이 가져온 파급효과와 비슷한 일들을 보게 될까? 사실 이들 간에는 유사점이 많다.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 화폐는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등 새로운 오픈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한 핵심기술의 발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핵심기술은 처음부터 여러 개의 분산된 계층이 모여 전체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는 점도 인터넷과 유사하다. 각각의 계층은 상호 운용이 가능한 개방형 프로토콜에 따라 정의되며, 개인이나 기업 모두는 자유롭게 이 프로토콜을 이용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개발 초기단계인만큼 여러 기술이 서로 경합을 벌이고 있으니 블록체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도 정확히 어느 블록체인을 말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도 인터넷과 같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같은 네트워크를 사용할 때 블록체인 기술의 힘이 가장 강력해지는 것이므로, 앞으로는 블록체인을 이야기할 때 여러 블록체인 중 단 하나만을 가리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을 구성하는 계층은 수십 년에 걸친 개발의 결과다. 각각의 기술적 계층은 폭발적인 규모의 창의적 응용과 사업활동을 이끌어냈다. 초창기 인터넷은 컴퓨터가 전선을 통해 비트(정보단위)를 전송하는 법을 표준화했고, 3Com과 같은 기업은 네트워크 스위치 제품을 통해 굴지의 대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컴퓨터 간 전송되는 데이터패킷의 호출과 통제에는 TCP/IP프로토콜이 사용되었는데, 시스코는 이 프로토콜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어 2000 3월 글로벌기업 시가총액 기준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9년 팀 버너스 리Time Berners-Lee가 개방형 프로토콜 HTTP를 선보인 이래 인터넷은 이베이,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기업을 현실로 만들었다.

 

 

 

블록체인의 ‘킬러 앱’은 무엇일까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국방비로 개발된 초창기 인터넷은 연구기관과 대학을 연결하는 것이 목적이지 상업용이 아니었다. 인터넷은 애당초 이윤 창출이 아니라 가장 탄탄하고 효과적인 통신망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자 만든 기술이다. 게다가 상업적 참여자나 그러한 이해관계의 부재 자체가 인터넷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트워크 아키텍처 구성에 필요한 자원공유 방식은 시장 주도의 개발 체제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 인터넷의 이른바 킬러 앱’, 다시 말해 온 세상이 인터넷의 가치를 인정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은 인터넷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네트워크를 강화시켰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블록체인의 도입을 이끌고 있는 것은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중이며, 활발한 기술전문가 커뮤니티와 빈틈없는 코드 리뷰 프로세스 덕분에 비트코인은 여러 블록체인 중에서 가장 높은 보안성과 안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메일이 그랬던 것처럼 아마 비트코인도 결국 몇 가지 형태만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s, 자산 등록asset registries, 그리고 금융 및 법적 용도 이상의 새로운 유형의 거래업무를 포함한 다양한 응용 형태를 지원하게 될 것이다.

 

비트코인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면 새로운 방식의 분산된 자동화 금융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소우주microcosm라고 정의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비트코인의 성능은 아직 상당 부분 제한적이다. 현존하는 다른 결제 시스템과 비교해 거래량도 부족하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규제시스템과 경제시스템을 포괄하는 코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높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일례로 모든 거래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받아들여지기 전에 반드시 특정 규칙을 만족해야 한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현재의 금융시스템에서는 사람이 규칙을 만들고 사람이 위반 행위를 잡아낼 감시인을 지정하지만, 비트코인에서는 코드가 규칙을 만들고 네트워크가 그 준수 여부를 감시한다. 거래 시 디지털 서명이 맞지 않는다거나 하는 규칙 위반이 일어나면 네트워크가 자체적으로 그 거래를 무효화한다. 비트코인에서는 심지어 통화정책도 코드의 일부다. 10분마다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며, 총 공급량을 항상 2100만 비트코인으로 유지함으로서 통화 공급을 정부가 결정하지 않고 원자재에 연동시키는 금본위제와 같은 경화hard money규칙을 따른다.

 

여기서 현재의 비트코인이 주는 선택권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의 경화 규칙에 동의하지 않으며, 법률인들은 코드만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유용한 재량권이 가질 수 있는 역할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비트코인이 엄연히 실존하며 현재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미 비트코인에 실질적 경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보유하고 유지하는 채굴자miners와 비트코인 거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디지털지갑 제공자wallet providers는 예외 없이 규칙을 준수한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각종 공격을 꿋꿋이 버텨왔고, 비록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안정적인 결제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처럼 블록체인의 응용범위를 넓혀 금융시스템을 재편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로 하여금 긴장 반, 기대 반의 시선을 갖게 만든다.

 

 

 

과유불급을 경계하라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핀테크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너무 앞선 상황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이 산불 번지듯이 유행하다 보니, 수십 년 동안 이미 존재해 온 데이터베이스의 개념을 당당히 블록체인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인터넷이 본격화되기 전에도 네트워크를 통해 양방향 멀티미디어를 제공하는 통신사와 케이블업체들은 분명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기억 속에 뚜렷이 이름이 남아 있는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아마 블록체인 분야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단 지금으로서는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기존 금융기관들과 급변하는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암호화 화폐의 경우 오히려 인터넷 초기단계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벤처자본의 투자금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자들과 기업들의 이러한 폭발적 관심은 암호화 화폐와 인터넷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터넷은 수십년 동안 비상업적 연구자들이 비교적 조용하게 아키텍처를 실험하고 반복해서 다듬으며 재고할 수 있었던 반면, 암호화 화폐는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MIT 미디어랩의 디지털화폐 이니셔티브Digital Currency Initiative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금전적 이해관계나 동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오직 블록체인 기술과 인프라의 개발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연구기관은 거의 없다. 이는 중대한 문제다.

 

현재 우리의 금융시스템은 매우 복잡하며, 그 복잡성은 위험 부담을 가중시킨다. 암호화 화폐가 실현할 새로운 분산형 금융시스템은 매개 계층의 필요성을 제거함으로서 전체 구조를 단순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위험 보장도 그만큼 용이해지고, 지금까지와 다른 자금 이동 방식을 채용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금융상품이 개발될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암호화 화폐가 도입되면 종전까지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경쟁이 가능해진다. 규제당국은 기준을 완화시키지 않고도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재고함으로써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체계적 위험을 줄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불투명성으로 인해 힘든 것은 사용자나 규제 당사자나 마찬가지기 때문.

 

 

 

이것만은 기억하자

 

기술의 일차적인 용도, 그리고 그 기술과 인프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얻으려는 가치는 기술이 성숙함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블록체인 기술도 분명 같은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본다.

 

당초 비트코인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일종의 대응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블록체인을 탄생시킨 커뮤니티는 무료 소프트웨어 문화와 같은 반상업적 가치를 표방하며 강한 자유주의적, 반기득권적 성향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결국 리눅스도 거의 모든 상업용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에 탑재되고 있는 것처럼, 블록체인의 궁극적인 활용 사례 중 상당수도 대기업, 정부기관, 중앙은행 등과 같은 기존 참여자들이 당연시하며 사용하는 표준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블록체인 기술과 핀테크가 마치 CD-ROM처럼 단순한 정보전달 기술인 것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블록체인과 핀테크는 인터넷이 미디어 및 광고 분야의 판도를 뒤바꿔 놓은 만큼 금융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경제구조의 중심축이 근본적으로 재편된다는 것은 현재의 시스템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던 기업에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변화에 대응하려면 연구와 실험에 반드시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새롭게 부상할 금융시스템 속에서 생존과 성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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