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벤 앤트레터(Torben Antretter),이보 블롬(Ivo Blohm),샤를로타 세이렌(Charlotta Siren)
많은 대형 벤처캐피털이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투자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전 구글벤처스 파트너인 빌 마리스(Bill Maris)는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큰 데이터세트에 일단 접근해보고 나면 (이를 활용하지 않고) 직관에만 의존하는 투자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 투자자는 구글처럼 많은 리소스에 접근하기가 어렵고 여전히 기존의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대적으로 자신의 직관에 의지해 투자를 결정하곤 하는 엔젤투자자들이 대표적이죠. 물론 기술의 발달과 머신러닝을 통한 강력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비용이 점차 낮아짐에 따라 투자자들은 조만간 인공지능과의 협업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스타트업 초기 단계 투자를 결정함에 있어 과연 인공지능이 사람의 판단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엔젤투자자들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그 답을 찾아보고자 우리는 투자 알고리즘을 만들어 엔젤투자자 255명이 내는 수익과 실적 비교를 해봤습니다. 이 투자 알고리즘은 유럽 최대의 엔젤 투자 네트워크에서 가져온 623개의 거래 정보로부터 가장 확실한 투자 기회를 선택하도록 최신식 머신러닝 기술을 동원해 학습했습니다. 피칭 자료, 소셜미디어 프로파일들, 웹사이트 정보 등을 포함해서 엔젤투자자들이 접근하는 것과 동일한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하되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수치를 측정하는 대신 각 스타트업의 생존 가능성을 예측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알고리즘이 훨씬 더 폭넓고 신뢰도 높은 데이터세트를 학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투자 예측 모델로 실제 투자를 시뮬레이션하고 엔젤투자자들과 알고리즘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비교해 봤습니다. 나아가 경험치(10회 미만의 투자를 진행해본 초보 그룹 vs. 최소 10회 이상의 투자를 리드한 능숙한 그룹)에 따라 구분한 투자자들의 결과가 알고리즘의 결과와 어떤 상관관계를 보이는지도 분석해 봤습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투자자들 중 노련한 그룹은 초보 그룹보다 평균적으로 2배 이상의 투자를 실행하고(12.2 vs 5.2) 한 스타트업당 투자 금액도 두 배 이상이었습니다. (€1만0530 vs. €4548)
결과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을 언제, 어떻게, 투자에 활용하면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인사이트도 담겨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 투자 알고리즘의 수익이 초보 투자자 그룹을 쉽게 앞질렀는데요, 투자 경력이 짧아서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투자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인간의 인지적 편향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노련한 투자자들은 훨씬 더 합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우리의 연구는 인지적 편향이 사람의 의사결정을 어떻게 비틀어 버리는지, 그리고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게 더 합리적으로 투자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고리즘과 사람(엔젤투자자)의 대결
인지적 편향(선입견이나 편견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투자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연구를 위해 우리는 총 다섯 가지로 편향을 구분해 측정했습니다.
1) 지역 편견 : 익숙하고 가까운 지역에 투자하고자 하는 경향
2) 손실 회피 : 다가올 이득보다는 손실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
3) 과도한 신뢰 : 평소보다 특정 스타트업에 지나치게 신뢰를 많이 주고 자금을 많이 붓는 경향
4) 젠더(성별) 편향
5) 인종 편향
데이터에 따르면 다섯 개 편향이 모두 투자자에게 나타나는 가운데, 특히 ‘과도한 신뢰’가 가장 많이 나타나고 투자 수익에도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소 91% 비율로 한 번 이상 나타남)
불합리한 투자 결정이 인지적 편향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알고리즘이 사람의 결과물을 뛰어넘는다는 것도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알고리즘의 내부 수익률(IRR)이 7.26%인 데 비해 (연구에 참여한) 255명의 엔젤투자자의 평균 수익률은 2.56%였습니다. 알고리즘이 사람보다 약 184% 더 수익을 낸 셈입니다.
물론 모든 투자자가 똑같이 자신의 편견에 휘둘리는 것은 아닙니다. 포트폴리오 운용에 있어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이 덜 나타나는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같은 초보 그룹 안에서도 편향적 행동이 적은 그룹은 3.51%의 내부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편향적 성향이 높은 그룹은 무려 평균 -20.52%의 손실을 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알고리즘이 심지어 노련한 투자자들도 넘어설 수 있는지 살펴봤는데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투자 경력이 많은 엔젤투자자일수록 인지적 편향이 현저히 적게 나타내며, 이에 따라 투자 수익도 월등하게 좋다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숙련된 정예부대의 평균 IRR는 22.75%에 달했습니다.
이 마법 같은 결과가 오직 경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경험치가 많은 투자자 그룹 중에서도 인지적 편향이 높은 그룹은 고작 평균 2.87%의 수익률만 달성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즉, 오랜 경험과 더불어 자신의 인지적 편향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줄 아는 투자자만이 초기 단계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압도하는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보다 알고리즘의 경쟁력을 더 높여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벤처에 투자하며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을 높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내림세를 방어하거나 상승세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간 벤처 투자의 핵심은 언제나 통계를 뛰어넘는 예외 케이스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예를 들면, 유니콘 기업을 발굴하는 것). 하지만 우리의 연구는 초기 투자의 핵심 가설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유합니다. 알고리즘이 255명의 엔젤투자자 대부분보다 더 나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생존 가능성’을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한 방의 홈런을 노리는 것보다 좋지 못한 투자를 방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성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데이터가 말하고 있습니다. 지푸라기 덤불 속에서 바늘 하나를 찾으려 애쓰는 대신 “이 사업은 과연 생존율이 높고 지속가능성이 있는 사업인가”라고 묻는 것이 수익률 높은 포트폴리오를 형성하는 데 사실상 더 값진 일일 수 있습니다.
공정성 측면은 어떨까?
알고리즘도 결국 그걸 만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편파적이지 않은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 연구 사례의 경우 알고리즘이 학습한 데이터는 사람이 직접 분류한 결과물은 아니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채용’ 알고리즘은 과거의 채용 결과가 좋은 것인지, 아닌지 사람이 판단한 자료입니다) 우리가 만든 투자 알고리즘은 수백 개 스타트업의 실제 성과 데이터를 학습했고, 비교적 높은 객관성으로 사람 투자자들에 비해 전형적인 편견(손실 기피 또는 과도한 신뢰 등)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편향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유색인종 대신 백인 기업가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창업자가 남성인 스타트업에의 투자를 선호하는 것에 몹시 놀랐습니다.
알고리즘의 편향적인 선택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지나친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머신러닝 모델은 대부분 이미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분류된 데이터를 학습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좋은 투자였는지 혹은 나쁜 투자였는지) AI 자체는 기본적으로 편향적이거나 불합리한 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의사결정에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학습시킨 실제 현실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추정해 낼 뿐입니다.
인공지능은 아마 경력이 짧은 개인투자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평가 능력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하는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수를 줄이도록 돕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사회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데이터 자료가 객관적이고 (우리의 연구 사례에서처럼) 사람의 판단이 비교적 개입되지 않은 정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알고리즘 자체는 인종이나 젠더 편향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치우친 선택을 내릴 가능성은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편향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 학습 데이터 안에 녹아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알고리즘이 예측을 위해 근거로 활용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스타트업이 앞서 받은 투자 정보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투자 유치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더 낮은 투자 유치 결과와 더 낮은 생존 성공률을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여성이나 유색인종 창업자들의 회사가 더 일찍 소멸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인공지능에 의해 미래에도 강화되는 악순환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연구 사례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투자자가 인종과 젠더의 선입견에 덜 치우친 결정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단 합리적일 뿐 아니라 초기 단계 투자의 결과도 더 좋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노련한 투자자 그룹에 속한 사람들 중 유색인종 창업가들의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경우 알고리즘보다 우수한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알고리즘의 저변에마저 깔려 있는 암묵적 배제의 패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덕분에 성공적인 투자 결과를 일궈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정함과 효율성 둘 다 얻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알고리즘의 선택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인공지능에 공급한 데이터 안에 스며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인공지능이 저절로 해결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이브리드적으로 접근하자
이 연구는 인공지능 활용이 초기 단계 투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고, 사람의 편향적 행동을 개선할 수 있으며, 사람 대비 우수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인지적 편향을 조절해 효율성이나 타당성 측면에서 모두 알고리즘을 뛰어넘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직관과 알고리즘의 판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투자자와 업계 매니저들은 알고리즘이 ‘최종 결정’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예측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치우친 생각과 행동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인공지능이 사람 대신 결정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과 인공지능의 강점을 잘 결합해, 즉 '하이브리드 지능'을 활용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 우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업력이 짧은 초보 투자자들이 초기 단계 투자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도움으로 엔젤 투자를 시작하는 것은 초보 투자자들의 위험 부담도 줄이고, 그들의 커리어 초기에 더 높은 투자 성과를 얻도록 하며, 나아가 투자 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엔젤투자자들의 지속적인 투자는 직업 창출과 혁신 성장의 생태계 측면에서 몹시 중요한 자원입니다. 투자 알고리즘에는 초보 투자자들의 전문가다운 결정과 투자수익 향상을 지원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우리의 연구 결과는 스스로 인지적 편향을 잘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경험치가 높은 투자자들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의 투자 직관이 얼마나 귀중한 기준으로 여겨져야 하는지가 이미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리즘은 그저 ‘객관적’(이지만 사회적 편향을 재생산하기 쉬운) 과거 데이터로만 학습할 게 아니라 소수의 뛰어난 의사결정자들의 선택과 행동도 학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투자 알고리즘은 더 나은, 더 합리적인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공지능이 금융시장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고 해도 초기 단계 투자의 가장 우수한 사례들은 여전히 노련한 사람 투자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투자 알고리즘이 궁극적으로 그 어떤 훌륭한 투자자마저도 대체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한 핵심은 사람의 편향에 반대되는 쪽으로만 움직이도록 할 게 아니라 가장 탁월한 투자 전문가들의 직관을 모방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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