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우: 하버드경영대학원 조교수이자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선임 연구원.
스콧 듀크 코미너스: 하버드경영대학원 부교수이자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겸임교수.
한 해 동안 기술 업계에 수많은 변화와 지각변동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운 소식은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슬랙(Slack)을 277억 달러(약 30조 원)에 인수한다는 뉴스였죠. 고객관계관리(CRM) 업계의 베테랑 기업이 잘나가는 메신저 앱을 인수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요? 올해 기록적으로 성장한 슬랙은 왜 기업을 매각하는 걸까요? 영업 솔루션에 e메일을 대신하는 서비스를 결합한다고 해서 얼마나 커다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의아해했고, 세일즈포스 주가는 8% 이상 하락했습니다.
겉보기에 두 기업은 그다지 닮은 점이 없습니다. 세일즈포스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 영역을 개척했죠. 대표적인 상품인 CRM을 바탕으로 마케팅 분석 애플리케이션과 클라우드 인프라 서비스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고요. 반면 슬랙은 주로 기업이나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조직 간 커뮤니케이션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두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협입니다. 세일즈포스의 CRM이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 제품인 다이내믹스 365(Dynamics 365)보다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비즈니스 분석 도구 영역에서는 각각 태블로(Tableau)와 파워비아이(PowerBI)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일즈포스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호스팅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지요. 슬랙이 느끼는 위협은 좀 더 큽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16년에 출시한 기업용 메신저 및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팀즈(Teams) 때문입니다. 슬랙이 여러 면에서 팀즈보다 장점이 많지만 팀즈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는 강점이 있어요. 팀즈 무료 버전도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인 마이크로소프트 365 오피스 프로그램에 번들로 제공되기도 하죠. 팀즈는 번들 전략 덕분에 2019년 하반기 일일 활성 사용자 수가 슬랙 사용자 수의 두 배 가까이 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이번 기업 인수가 일어나게 된 동기도, 이 인수가 실수로 판명 날 거라고 생각되는 이유도 모두 오늘날 기술 업계의 경쟁 구도 때문입니다. 인수되기 직전까지 슬랙은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전략(best-of-breed strategy)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었습니다. 독자적인 애플리케이션 한 가지에 집중해 품질을 최고로 올리려고 노력하는 전략 말이죠. 반면 세일즈포스와 함께하게 되면서 슬랙은 이제 통합 번들 전략(integrated bundle strategy)으로 변화를 꾀하게 됐습니다. 번들로 묶여 함께 판매되는 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전략이죠. 통합 번들 전략에서는 각각의 애플리케이션이 해당 영역에서 최고일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대개는 최고가 아닌 제품을 하나로 묶는 경우가 많죠. 이번 인수를 통해 세일즈포스의 CEO인 마크 베니오프(Mark Benioff)는 기업과 고객을 완전히 연결하는 통합 번들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는 목표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됐습니다. 슬랙은 더 큰 생태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약간의 안정감을 얻게 됐죠.
오늘날 기술 기업의 리더들은 슬랙과 비슷한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베스트 오브 브리드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그렇다면 통합 번들에 포함되는 것이 더 좋은 경우는 언제일까요? 기업은 적절한 전략을 선택해야만 성공하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슬랙과 줌을 찬찬히 들여다봅시다
저희는 최근 베스트 오브 브리드와 통합 번들 간의 경쟁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던 초기에 베스트 오브 브리드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인 줌(Zoom)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이 초기 단계에 선택한 올바른 전략과 문화가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났을 때 어떻게 유리하게 작용하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줄 사례 연구를 위해서였죠. 저희는 줌으로 임원진과 만나 여러 분기 동안 사용자와 매출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이 기업의 전략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에 관해서도 깊이 알고 있습니다. 필자 중 한 명인 앤디 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진을 만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포함한 전반적인 클라우드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거든요.
이런 배경 덕분에 저희는 슬랙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 기업 매각을 결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슬랙과 줌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사실 두 기업에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두 기업 모두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전략의 훌륭한 사례입니다. 둘째, 두 기업 모두 자금 여력이 되는 경쟁사의 통합 번들 전략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오피스에 묶음으로 구성된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는 메신저와 화상회의 기능으로 두 회사를 각각 위협했습니다. 저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 구도에 있는 슬랙과 줌을 분석하면서 베스트 오브 브리드로 성공하려는 기업가나 통합 번들 전략을 추구하는 임원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전략
간단히 말해,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전략의 핵심 강점은 ‘집중’입니다. 베스트 오브 브리드 기업은 경쟁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다른 프로젝트에 자원을 나눠 투입하지 않습니다. 제품의 품질이 저하되는 것도 용납하지 않죠. 이 전략을 추구하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십을 맺을 기회도 생깁니다. 하지만 슬랙은 장기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경쟁사를 상대로 할 때는 이런 강점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합니다.
조직의 최우선 순위.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전략을 추구하면 경영진은 하나의 제품에만 집중해 엔지니어와 영업 인력, 예산을 온전히 투입할 수 있습니다. 경영진은 넉넉한 자원(학계에서는 여유 자원(slack resources)이라고 지칭합니다)을 투입함으로써 좀 더 민첩하게 혁신하고, 애플리케이션이 계속해서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발맞춰 나갑니다. 줌의 CEO인 에릭 위안(Eric Yuan)은 창업하기 전에 시스코에서 웹엑스(WebEx)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0년의 근무 끝에 실망을 안고 회사를 떠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죠. “[웹엑스]를 좋아하는 고객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어요.” 웹엑스는 시스코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네트워킹 하드웨어나 보안 소프트웨어에 예산을 투입했죠.
상충되는 제품의 품질 희생 최소화. 한 가지 애플리케이션에만 집중하면 제품 통합을 위해 품질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없어집니다. 시스코는 웹엑스가 자사의 VoIP 전화(인터넷 전화) 하드웨어에서 최상의 상태로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하드웨어에서 사용할 때의 사용자 경험은 희생할 수밖에 없었죠.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도 워드와 원드라이브, 셰어포인트를 무리하게 통합하면서 파일을 저장할 때 충돌하거나 누락되는 문제를 겪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일을 저장하는 데 최적화된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 드롭박스(Dropbox)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드라이브보다 워드 문서를 저장하기에 더 안전한 장소가 됐죠.
고객이 직접 고르는 맞춤형 서비스.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은 고객에게 번들 제품 전체를 사용하거나 구매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고객은 불필요한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 골라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사용자 경험이 최적화되죠.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365 패키지를 통째로 구매하는 대신, 최고의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예: 줌)과 최고의 파일 저장 공간(예: 드롭박스),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예: 프레지) 등 각각 다른 기업의 제품을 골라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파트너십 기회와 플랫폼화. 베스트 오브 브리드 기업은 사업 영역을 넓히지 않음으로써 다른 영역에 있는 베스트 오브 브리드 기업에 위협을 주지 않고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 전략 방향을 계속 유지하면 다른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과 통합해 가면서 다면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줌이 2020년 10월에 줌 앱스(Zoom Apps) 플랫폼을 출시했을 때 25개의 파트너 기업 중에 드롭박스와 슬랙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애플리케이션 사용자와 서드 파티(third-party) 공급자 간에 간접 네트워크 효과가 형성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죠. 앤디 우가 참여한 최근 연구에서 나타나듯 그 결과는 대중적 수용(mass adoption)으로 이어집니다.
통합 번들 전략
반대로 통합 번들 전략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고객에게는 편리함을 주고, 기업 고객에게는 비용을 낮춰줍니다. 슬랙을 인수한 세일즈포스는 통합 번들 상품을 통해 이런 소비자 편익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더 높은 가격 책정. 통합 번들은 경제학자들이 가격 차별화(price discrimination)라고 일컫는 방식으로 개별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할 때보다 더 큰 매출을 창출합니다. 예를 들어,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하려는 두 명의 고객, 스콧과 앤디가 있다고 해봅시다. 스콧은 워드에 10달러, 파워포인트에 8달러를 지불할 의사가 있고, 앤디는 워드에 8달러, 파워포인트에 10달러를 지불할 의사가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워드와 파워포인트를 각각 따로 판매한다면 각 애플리케이션을 스콧과 앤디 모두가 구매할 의사가 있는 8달러에 판매해야 최대 매출을 올릴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매출액은 32달러(=2 x ($8 + $8))가 되죠.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두 애플리케이션을 하나의 번들 상품으로 판매한다면 스콧이나 앤디 모두에게 18달러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매출액은 36달러가 되죠.
이 원리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고객마다 번들 내 애플리케이션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면서도 각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구매하고자 해야 합니다. 슬랙과 세일즈포스 CRM을 둘 다 구매하고 싶어 하는 고객 중에 슬랙의 가치를 더 높게 여기는 고객과 세일즈포스 CRM의 가치를 더 높게 여기는 고객이 동시에 있을까요? 분명히 그럴 가능성이 있죠. 물론 슬랙을 인수하게 된 동기가 이것만은 아닐 테지만요.
판매 효율성. 통합 번들 전략을 사용하면 영업 담당자나 외부 유통 파트너가 고객 한 명에게서 더 높은 매출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존 고객에게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교차 판매할 수 있죠. 매출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신규 고객 유치 비용이 더 높아져도 괜찮습니다. 시스코가 네트워킹 하드웨어 고객에게 웹엑스와 보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죠. 앤디 우가 조사했던 사례 연구에 나타나듯 이는 이제 통상적인 프로세스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부분이 슬랙의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기업 영업 경험이 많고 규모가 큰 마이크로소프트의 효율적인 영업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액센츄어 같은 기업과 깊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고객과의 관계도 탄탄했으니까요. 세일즈포스와 슬랙은 따로 있을 때보다 같이 있을 때 더 효율적으로 영업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하면 여전히 힘이 떨어지지만요.
통합 상품으로 가치 상승. 이론적으로는, 상호 보완적인 애플리케이션을 통합 번들로 제공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기업 고객은 두 부류의 핵심 관계자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 제품 사용자와 구매 결정을 내리는 고위 임원(보통은 CTO) 말이죠. 오피스 사용자로서, 우리는 애플리케이션을 오가는 대신 파워포인트에서 바로 엑셀 그래프를 수정할 수 있음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오피스 사용을 결정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CTO였죠. 수많은 서비스를 관리해야 하는 요즘의 CTO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한 업체에만 이야기하면 된다는 점에서 통합 상품을 선호할 겁니다.
세일즈포스는 CRM에 슬랙을 통합해 사용자와 CTO 모두에게 가치를 창출하고자 합니다. 특히 세일즈포스 CEO인 마크 베니오프는 e메일을 대체하려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어요. 슬랙과 통합함으로써 세일즈포스 CRM을 사용하는 영업 부서에서는 e메일이나 전화 대신 메신저로 고객과 끊김 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서드 파티 개발 업체도 이 혁신 과정에 힘을 더하고 있고요. 세일즈포스는 이미 규모가 꽤 큰 서드 파티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슬랙을 지원하는 2400개의 애플리케이션이 더해지게 됐습니다. CTO들에게는 기술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해야 할 업체가 하나 줄어든 셈이고요.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이 통합 번들 애플리케이션과의 경쟁에서 이기거나 적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는 무엇일까요?
‘독자적인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 애플리케이션들을 번들로 묶어 제공함으로써 생기는 편리함과 통합성을 능가할 수 있는가?’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의 성패를 좌우하는 질문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365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죠.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는 베스트 오브 브리드 기업은 오피스 번들에 포함된, 혹은 곧 포함될 예정인 애플리케이션과 중복되더라도 자사의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할 가치가 있음을 설득해야 할 겁니다. 고객들은 베스트 오브 브리드 기업의 애플리케이션이 오피스에 이미 포함된 무료 애플리케이션보다 월등하게 뛰어날 때만 추가로 돈을 지불할 테고요. 마이크로소프트가 2016년에 팀즈를 출시했을 때, 슬랙은 뉴욕타임스에 전면 광고를 실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슬랙의 고객을 끌어들이려면 자신들만큼 고객 성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자신들만큼 고객들에게 행복을 안겨 줘야 할 것이라고요. 안타깝게도 슬랙의 주장은 틀렸습니다. ‘무료’ 혹은 ‘한계 비용이 제로’라는 속성은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을 바꾸는 매우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었죠.
기능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하게 만드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이 속한 카테고리나 목표 고객의 유형에 따라 세부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죠. 하지만 무엇보다 베스트 오브 브리드 기업이라면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하는 핵심 질문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개선된 성능이 고객에게 비교 불가능한 가치를 전달하는가? 이 문제는 결국 다음 질문의 답으로 귀결됩니다. (1)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을 얼마나 열렬하게 사용하는가? (2) 애플리케이션이 고객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가?
먼저,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을 아주 열심히 사용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 사용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충분히 자주, 오랜 시간 동안 써야 하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업무 시간 중 많은 부분을 화상회의를 하면서 보냅니다. 줌이 제공하는 한계 우위(marginal superiority), 즉 영상 품질이 약간 더 우수한 정도라도 사용자들은 그것을 가치 있게 느낍니다.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영상이 잠깐 끊기는 등의 작은 문제로도 피로감을 느끼고, 집중력과 생산성이 떨어지거든요. 애플리케이션의 품질이 좋아질수록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줌 사용이 편안하게 느껴질수록 더 오랫동안 사용하게 되고, 사용할 수 있게 되죠.
반면 메신저는 화상회의 툴과 달리 오랜 시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슬랙을 가끔씩 들여다보기는 해도, 한 번에 긴 시간 동안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죠. 채팅 도중에 작은 문제나 비효율적인 일이 발생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고 이 때문에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둘째, 애플리케이션은 구매 결정권자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늘 그럴 필요는 없지만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아주 중요한 순간만큼은 꼭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하죠. 예를 들어, 수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장은 수업 도중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이 끊기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버드경영대학원은 수업과 관련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비용을 아끼지 않습니다. 줌과 같은 최고 수준의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죠. 반대로 메신저가 30분 정도 끊기는 문제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고객이 잠재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곧 ‘고객의 규모가 얼마나 큰가?’로 이어집니다.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의 가치를 최대로 끌어내는 데는 중소 규모의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보다 글로벌 기업이 유리합니다. 고객의 규모가 클 때 베스트 오브 브리드의 강점이 두드러지고 추가 비용을 들일 이유가 확실해지기 때문이죠.
먼저, 대규모 기업은 스스로 효과적으로 번들을 구축할 규모와 자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대신해서 그 작업을 해줄 필요가 없죠. 규모가 작은 고객은 애플리케이션을 맞춤형으로 구성할 정도로 사용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통합 번들을 구매하는 편이 더 유리할 테고요.
둘째,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네트워크 효과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슬랙은 조직 안에서 많은 이가 사용할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고위 의사결정자가 직원들에게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사용하라고 지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려면 조직 내부에서 사용자가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하니까요. 실제로 앤디가 슬랙을 사용하는 스콧과 채팅을 하려면 둘 다 슬랙을 설치하고 자주 확인해야 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e메일 등 다른 유형의 소통 수단에 익숙하다면 슬랙만의 가치가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 애플리케이션은 별도로 비용을 들여 구매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이 되죠.
그러나 줌은 이런 네트워크 효과에 크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앤디가 스콧과 회의를 하려고 줌 링크를 보내면 스콧은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따로 줌을 설치할 필요가 없거든요. 스콧이 기본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을 팀즈로 설정해 뒀더라도 앤디가 초대한 회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스콧은 줌을 설치하지 않습니다!)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은 네트워크 효과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때 더 유리합니다. 물론 이런 특징은 선택의 문제는 아니죠.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이 통합 번들 애플리케이션보다 우위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제품이 아직 통합 번들 경쟁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번들 업체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번들 업체가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번들 상품 전체를 지키기 위해서 큰돈을 쏟아부으며 시장에 남아 경쟁하려고 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슬랙과 줌이 만들어 놓은 기회와 오피스 프로그램에 닥칠 잠재 위협을 발견하고 팀즈에 전념했습니다. 구글도 비슷한 목표하에 최근 메신저와 화상회의 기능의 미트(Meet)를 업그레이드했죠. 통합 번들 애플리케이션은 스스로 혁신을 이루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을 따라하기만 하면 되죠. 게다가 풍부한 자원 덕택에 빨리 따라잡을 수 있고요.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이 풍족한 재원을 보유한 통합 번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합니다.
제품 차별화를 유지할 수 있는 잠재력.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이 번들 애플리케이션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려면 기술적 능력을 갖춰야만 합니다. 경쟁자가 베스트 오브 브리드의 과거 혁신을 베끼고 있는 사이에 제품을 개선해 나가며 선두를 지킬 수 있어야 하니까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슬랙은 주제 중심의 채널과 재미난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혁신을 이뤄냈지만 경쟁자가 쉽게 보고 따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큰 도전에 맞닥뜨릴 것입니다.
다시 줌을 살펴봅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잊어버렸거나, 혹은 전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줌은 화상회의에 가상 배경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컴퓨터 화면 관련 기술에 큰 비용을 투자해야 했죠. 줌의 선례를 통해 이 기능이 의미가 있다고 증명되자 경쟁사들은 가상 배경을 핵심 기능으로 설정하고 빠르게 따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화상회의 같은 제품들은 영업 비밀 유지, 특허 등의 방법으로 고도의 선진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줌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선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혁신 요소를 만들어 낼 때까지 소중한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상 배경을 따라 만들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렸고 그 기간 동안 줌은 여러 가지 새로운 기능을 발표했습니다. 슬랙이 메신저 기능만으로 이처럼 기술적 혁신을 이루며 지금의 자리를 방어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자물쇠 효과. 슬랙처럼 조직 내 네트워크 효과에 의존하는 제품은 처음부터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특징은 취약한 요소가 되죠. 고객을 묶어 두는 요소와 누구나 제품을 사용하기 쉽게 만들려는 디자인 결정이 자주 충돌하거든요. 사용자가 혁신을 빠르게 수용하는 제품군의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은 고객이 쉽게 다른 애플리케이션으로 전환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줌의 소그룹 회의실이나 투표 기능처럼 사용법을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만들면 다시는 힘든 과정을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거든요.
애플리케이션 간 시너지의 중요성.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은 한 가지에만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강점에 목숨을 겁니다. 새로운 조합의 번들 상품이 나타난다고 해서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이 갑자기 퇴물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팀즈는 채팅에 문서 공유 기능을 더해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슬랙의 사용자가 보통 워드나 엑셀 파일을 공유하는 상황이라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기능을 더 잘 만들어낼 수 있죠. 화상회의 중 문서 편집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줌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겁니다. 줌이 이 기회를 먼저 포착하고 앞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면요. 하지만 이런 기능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면 줌이 현재의 유리한 고지를 이어가는 데 문제가 없겠죠.
이해관계자 간 네트워크 효과의 잠재력. 마지막으로,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은 서드 파티 애플리케이션과 통합함으로써 다면 플랫폼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를 만듦으로써 결국에는 여러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으로 통합 번들을 구성하는 것이죠. 슬랙은 꽤 탄탄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었고, 줌은 최근 이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슬랙의 과거 경험을 살펴보면, 이런 전략으로 탄생한 새로운 통합 애플리케이션이 베스트 오브 브리드 자체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한다고 해도 핵심 애플리케이션 전략이 지닌 약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리하며
특히 소통과 업무 방식에 큰 변화를 겪은 올해,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도움을 줬습니다. 슬랙과 줌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성능 좋은 메신저와 화상회의 도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겠죠. 과거 이 영역을 지배하던 애플리케이션들은 대부분 통합 번들에 포함돼 있었는데, 이런 수준의 혁신을 이뤄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러 제품군에 속한 미래의 베스트 오브 브리드 기업가들이 계속해서 한계를 넘어서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기업가들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하지만 슬랙과 세일즈포스처럼 베스트 오브 브리드 애플리케이션도 때로는 통합 번들로 구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베스트 오브 브리드 프레젠테이션 애플리케이션인 파워포인트를 만든 작은 기업 포어소트(Forethought)를 인수했습니다. 중대한 첫 기업 인수였죠. 그때 옳았던 일은, 지금도 옳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되니까요.
'기업에 눈뜨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팬데믹에 빅맥과 샐러드 매출이 오르는 이유 (0) | 2021.02.28 |
---|---|
미국 경제에 대공황이 오지 않는 이유 (0) | 2021.02.28 |
<인터뷰> 필 나이트 나이키 CEO가 말하는 ‘고성과 마케팅’ (0) | 2021.02.27 |
엔젤투자자 vs 알고리즘, 벤처 투자 대결 승자는? (0) | 2021.02.21 |
장기투자시 필요한 새로운 기업측정법 (0) | 2021.01.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