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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눈뜨기

미국 경제에 대공황이 오지 않는 이유

by 남이철이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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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칼슨-슬레이잭(Philipp Carlsson-Szlezak)은 BCG 뉴욕 사무소 파트너이자 전무 이사, BCG의 수석 경제학자.


마틴 리브스(Martin Reeves)는 BCG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선임 파트너이자 전무 이사, BCG 헨더슨 인스티튜트Henderson Institute 회장.
폴 스왈츠(Paul Swartz)는 BCG 헨더슨 인스티튜트이사이자 선임 경제학자.

 

코로나 위기로 대공황이 올까요?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 거시경제 붕괴를 초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실업률은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한 수준까지 올라갔었죠.(역주: 이 글이 쓰여지고 나서 발표된 미국의 5월달 실업률은 조금 내려갔습니다) 사태 완화를 위한 재정 정책 추진으로 서구 국가들의 정부 적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수준까지 높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이 결국 경기침체 또는 부채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팽배해 있구요.










그러나 비관론에 사로잡히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이번 충격의 강도가 매우 크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경제가 과거의 성장궤도나 성장률 수준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면 코로나바이러스는 거시경제에 장기적으로 구조적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도가 심각하다고 해도 하나의 거시경제 충격이 경기침체나 부채 위기와 같은 구조적 체제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주목해야 할 지표는 긍정적 거시경제 체제의 핵심인 '물가 안정성'입니다. 경기침체나 부채 위기와 같은 체제 붕괴는 각각 극심한 디플레이션이나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경제의 정상적 작동을 멈춥니다. 지난 30년간 미국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은 하락세, 낮은 수준, 안정세를 보였으며, 그에 따라 금리가 낮아지고, 비즈니스 사이클이 길어지고, 자산 가치가 높게 평가됐습니다. 그러나 만약 물가 안정성이 악화되면 실물경제와 금융 경제에 막대한 영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얼마나 우려되는 상황일까요?

구조적 체제 붕괴로 이어지는 네 가지 경로path

'심각한 위기'crisis와 '구조적 체제 붕괴'structural regime break 를 가르는 것은 정책과 정치 입니다. 지도자가 무능하거나 정치적 의지가 부족해  지속적으로 부적절하게 정책적 대응을 한다면, 위기에 빠진 경제가 부정적 궤도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과거 사례를 통해 구조적 체제 붕괴로 이어지는 4가지 경로를 각각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정책 오류 Policy Error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첫 번째 경로는 정치인과 정책입안자들이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미국 대공황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대공황은 대대적 정책 실패의 결과였으며 위기의 정도가 크고 지속기간이 길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 손상까지 남겼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념적 오해가 관련돼 있습니다.

• 통화정책 오류와 은행 위기: 은행 시스템에 대한 제한적 감독, 긴축적 통화정책,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1929~1933년 사이 수천 건의 은행 파산과 막대한 예금자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은행 시스템의 붕괴로 가계와 기업으로의 신용 흐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1913년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가 설립돼 표면적으로는 위기에 대응했지만, 실제로는 상황을 너무 쉽게 본 나머지 은행 시스템이 붕괴되는 동안 사태를 방관했습니다. 관념적 오류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 재정정책 오류와 긴축정책: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로 수수방관하며 너무 오랫동안 경제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뉴딜정책은 경기침체를 막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고 규모가 작아 피해를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1937~1938년 또 한 번의 긴축적 재정정책이 시행되면서 경제는 다시 무너졌습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총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대공황이 종결되고 생산량은 대공황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위와 같은 정책 실수로 20% 이상의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그로 인해 엄청나게 높은 실업 상황에서 자산의 명목 가치가 크게 하락해 부채의 실질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가계와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2. 정치적 의지 Political Willingness

심각한 위기에서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두 번째 경로는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이 분명하고 치료법도 알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해결책의 집행을 방해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이해나 사고방식이 아닌, 의지의 문제입니다.

가까운 과거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미국 의회의 전망과 의견이 엇갈리고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면서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수반한 경기침체 상황에 위험하리만큼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2008년 말 은행 자본 손실이 누적돼 신용경색credit crunch으로 이어지면서 경제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인플레이션 기대가 무너졌고, 은행 시스템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발생 위험이 현실화됐죠.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2008년 9월29일 하원에서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 관련 법안을 부결했던 때였습니다. 이후 시장 붕괴가 발생하는 등 값비싼 정치적 대가를 치른 후에야 정치인들은 TARP 프로그램에 대한 입장을 바꿨고, 며칠 뒤 10월3일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순간에 구조적 체제 붕괴를 막고 구조적 피해를 줄여 U자형 경기회복을 이루기 위해 정치적 의지를 한데 모은 셈입니다. 몇 년 뒤 미국 경제는 성장률을 회복했지만 위기 이전의 성장궤도로의 회복(U자형 경기회복)은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3. 정책 의존성 Policy Dependence


심각한 위기에서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세 번째 잠재적 경로는 행동에 나서기 위해 필요한 운영 자율성, 권한, 재정 자원 등이 정책입안자들에게 없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통화 주권monetary sovereignty이 없는, 즉 중앙은행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국가나 지역에서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자국 통화가 안정적이라고 해도 중앙은행을 통한 건전한 신용 흐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세계 금융위기 당시 그리스와 유럽중앙은행(ECB)간의 관계입니다. 자금 조달 접근을 위해 ECB를 이용할 수 없었던 그리스는 심각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으며 경기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4. 정책 거부 Policy Rejection

네 번째 경로는 경기침체가 아니라 부채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세 가지 경로와 차이가 있습니다. 정책입안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고 정치적 의지도 있지만 시장에서 이를 거부함에 따라 행동에 나서기 위한 실질적 자원을 조달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디플레이션 대신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앞선 세 가지 경로와 구별됩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1980년대 중남미 부채 위기, 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를 생각해봅시다. 이들 사례에서 정책입안자들은 채권시장과 통화시장의 거부로 정부 지출을 위한 자금 조달에 필요한 실질적 자원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구조적 체제 붕괴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이유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경기침체나 부채 위기로 이어지는 상황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네 가지 경로 각각을 살펴보면,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정책 오류 -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정책상의 어려움은 상당하지만 현재 나타나는 모습은 대공황 당시의 무대응과는 정반대입니다. 통화 측면에서 (환매조건부채권과 기업어음 시장에서) 은행 시스템에 첫 번째 스트레스 징후가 나타나자, 상당한 규모의 통화정책 대응이 시기적절하게 이뤄졌습니다. 재정 측면에서, 실질 경제(가계와 기업)의 유동성 및 자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조 달러의 자금을 공급하는 코로나19 구제법CARES Act이 통과하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책 행동에 나서는 것을 넘어서서, 1930년대와는 달리, 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정책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정책입안자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 정치적 의지 - 정치적 계산이 구조적 붕괴를 막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지만 치적 비용이 크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물론 다음의 두 가지 위험이 존재하긴 합니다. 분석이나 신념의 차이 때문에 법안을 아예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법안 방해에 따른 정치적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한쪽 당의 저지로 인해 법안 통과에 실패하는 위험이죠. TARP 법안 통과 실패 사례는 이 두 가지 위험이 모두 실재하며 간과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협상이 쉽게 이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파 싸움이 치열하게 이뤄지는 선거가 치러지는 시기에서조차 정치적 방해의 대가는 매우 큽니다.

• 정책 의존성 - 미국의 경우만 보면, 미국은 통화 주권이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낮고 안정적이며 통화 건전성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미 연방준비은행은 언제나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에 나설 것입니다.

• 정책 거부 - 미국의 부채 위기는 개연성이 낮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는 안정적이며, 있다 해도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위험 회피시기에 채권 가격이 상승(수익률은 하락)하는 수익률-위험 상관관계는 견고합니다. 전 세계 국가들이 미국 안전자산을 보유하려고 하면서 (또한 자국 화폐가 평가절상되길 원치 않으면서) 미국 달러의 지위는 공고해졌습니다. 그리고 명목 이자율은 일반적으로 명목 성장률보다 낮습니다(r – g <0). 이러한 요인은 모두 자금 조달 조건을 유리하게 만듭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모든 요인을 넘어서서 시장이 미국 채권 매입을 거부하게 만드는 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을까요? 가능하지만 매우 일어나기 어려우며,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체제의 붕괴는 수년간에 걸쳐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왜 붕괴에 대한 우려가 계속 나타나는 걸까요?


적어도 한 가지 대답은 코로나 쇼크의 정도가 매우 크기 때문일 겁니다. 생산량 감소의 규모와 속도를 감안하면 구조적 피해(회복의 형태)와 구조적 체제 붕괴 위험 등과 같이 다른 차원에서의 인식과 리스크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두려움으로 인한 분석 오류는 잘못된 기대를 설정하고 부적절한 계획을 장려하는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제 리더들이 분석의 함정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외재적 및 내재적으로 유사한 과거 사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래를 설명할 때에는 과거를 참고해야 합니다. 과거를 참고할 때에는 당시의 원인, 그리고 현재 상황과의 관련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 단일 데이터 포인트single data points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추론에 유의해야 합니다. 유사성이나 인과관계상의 동일성이 있나요? 모든 데이터세트에서 기록적 수치가 나오면 경제 및 금융 보고서에서 언제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전반적 맥락과 상황입니다.

• 두려움에 사고가 마비됐거나 고강도 사건high-intensity events으로부터 추론을 할 때에는 한발 물러서서 생각하세요. 한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측면에서 최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자신이 세운 시나리오의 의미를 이해하세요. 경기침체로 인한 체제 붕괴는 대규모 디플레이션을 의미합니다. 부채 위기로 인한 체제 붕괴는 낮은 화폐 가치와 높은 인플레이션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당연한 관계가 일관되게 나타나며 사실과 일치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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