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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눈뜨기

코로나 시대 주목받는 '피벗(pivot)' 전략

by 남이철이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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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로 기옌(Mauro F. Guillén)


코로나 셧다운으로 경제가 곧장 침체기로 들어서면서 대기업,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모든 기업이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출퇴근의 끝’ ‘소매업의 종말’ ‘세계화 붕괴’ 같은 주장이 대세론이 되면서 많은 경영진은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을 거라 보게 됐습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 전사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아니면 망하는 거죠.

그런데 요즘 기업들이 어떻게 위기에 대처하고 경기 회복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매우 뜻밖입니다. 기업들이 ‘피벗’ 전략을 쓰고 있는데요. 피벗은 생존이라는 단기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회복력과 성장성을 키우는 목표에도 도움이 되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고객과 회사가 공유 가치를 창출하는 수평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음악 스트리밍 분야의 글로벌 리더인 스포티파이를 생각해봅시다. 원칙적으로 이런 플랫폼은 요즘 같은 경제 봉쇄 속에서도 잘나갈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스포티파이의 고객은 대부분 집에 틀어박혀 각자의 재생 장치로 끊임없이 스트리밍되는 노래를 들으며 우울함을 달래곤 하니까요.

그러나 스포티파이의 피벗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스포티파이는 애플뮤직과 달리 무료 사용자에게 광고를 듣게 하는 서비스로 수익 일부를 얻습니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만 해도 스포티파이는 광고 수익이 무료 가입자보다 훨씬 빨리 늘어나서 주요 수익원이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성숙기에 무르익은, 낡아가는 모델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광고주들이 광고비를 삭감하기 전까지는 그 한계가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이에 대응한 스포티파이의 한 가지 피벗 전략은 팟캐스트 형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포티파이는 아티스트와 사용자가 한 달 만에 15만 개 이상의 팟캐스트를 업로드하는 것을 목격한 다음, 유명인들과 독점 팟캐스트 계약을 체결해 재생 목록을 큐레이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전략 수정, 즉 피벗 덕분에 스포티파이는 오히려 유행의 선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넷플릭스의 공공연한 성공 방정식을 더욱 적극 수용하면서 저작권자가 함께 충분한 수익을 누리는 상생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피벗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확실히 효과가 큽니다. 그렇다면 전통 비즈니스에도 피벗이 도움이 될까요?
예컨대, 코로나 19 락다운으로 타격을 입은 요식업계를 살펴봅시다. 많은 점주는 아예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우리가 보통 식당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풍경은 주방이 있고 그 옆에 손님이 식사할 좌석이 마련된 공간입니다. 그러나 사실 주방에서 조리된 결과물을 고객이 어디에 있든지 전달할 수만 있다면 식당에도 다양한 방식과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매장 내 식사, 테이크아웃, 배달, 케이터링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무궁무진한 선택지가 있죠.

요식업의 피벗 전략 중 한 가지를 예로 또 들어봅시다. 주 또는 월별로 정해진 횟수만큼, 메뉴 선택지 안에서 자유롭게 골라 먹을 수 있는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요? 한번 붙잡은 고객을 잘 관리하는 법만 터득한다면 점점 더 마진을 늘릴 수 있겠죠. 또 다른 전략은 식당에서 쓰는 재료를 고객이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밀키트를 구성하고, 반찬이나 추가 구성 등을 곁들여 제공하는 겁니다. 여기에 고객에게 조리 과정을 알려주는 동영상 링크까지 보내준다면 준비부터 완성까지 원스톱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1회 배달분의 양은 그 주에 식사 몇 끼는 해결할 정도면 되겠고요. 이 두 가지 전략은 더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될 수 있으며, 특히 요즘처럼 재택근무가 장기화할 경우 요식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재기가 휩쓸고 간 마트 진열대가 암시하듯이 이번 위기는 공급망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세 농민들에겐 둘도 없는 기회였습니다. 락다운 기간에 식당과 소매점들의 매출이 급감한 것을 지켜본 많은 영세농민들은 집에 갇힌 소비자의 니즈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공급망이 점점 더 짧아지는 추세에 대비해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클 만한 정보기술, 마케팅, 물류에 투자하는 겁니다. 예컨대, 일부 농업인과 지역 상점은 캐나다 전자 상거래 플랫폼인 쇼피파이(Shopify)로 눈을 돌렸습니다. 쇼피파이는 약 25㎞ 이내 거리에 있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 온라인 직거래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이 미처 눈길을 주지 않은 영역이었죠. 쇼피파이의 핵심 피벗은 판매자가 직접 비용을 관리하고, 대금을 지불하고, 현금 흐름을 예측하고, 배송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 대기업도 피벗을 합니다. 생활용품 대기업인 유니레버는 생필품 수요가 급증하자 스킨케어처럼 수요가 감소한 제품들 대신 포장식품, 세정제, 개인 위생용품 브랜드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습니다. 이런 변화로 어떤 제품군이 새로운 효자 상품이 될지는 누구도 아직 모릅니다. 앞으로도 재택근무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유니레버는 어떤 피벗이 효과가 있었음을 알게 되겠지요? 실제로 집안 활동에 특화된 소비 패턴으로 바뀌게 되면 식품 브랜드뿐 아니라 퍼스널 케어 제품군도 리포지셔닝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위기가 기존 브랜드에 더 위협적인 이유는 이제 소비자들이 점점 더 다양한 제품을 자발적으로 테스트해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회사를 보는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사회에 공헌하려는 기업들을 더욱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에 유니레버와 P&G처럼 무수히 많은 제품군을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들도 피벗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현재의 브랜드 충성도를 당연하게 여길 수 없고, 브랜드 리포지셔닝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커진 겁니다. 그러나 브랜드 목표를 단순히 재정비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아예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들은 안전, 경험, 안정감에 더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피벗이 좋은 성과를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방향 전환으로 효과를 보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원격 근무, 공급망 단축, 사회적 거리 두기, 엄격한 소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술 활용 등 팬데믹 이후 새로 등장하거나 강화된 장기 시장 트렌드에 피벗의 방향을 맞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분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된다면 데이트 플랫폼 틴더(Tinder)도 경쟁사인 범블이나 페이스북 데이팅처럼 동영상 데이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기업의 전략적 의도를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공고히 할 수 있도록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량을 수평적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에어비앤비는 갑작스러운 여행업의 붕괴로 어려움을 겪는 호스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잠재 고객과 연결해주는 식으로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제 호스트는 요리, 명상, 미술 치료, 마술, 작곡, 가상 투어 등 다양한 주제의 온라인 이벤트를 선보일 수 있으며, 게스트는 여기에 저렴한 비용을 내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호스트와 게스트 간 연결을 주선하던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에서 전방위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한 단계 진화했다고도 볼 수 있죠. 앞으로 온라인 체험은 여행자에겐 새로운 목적지와 현장 경험을 발굴할 기회를, 호스트에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줄 것입니다. 이제 에어비앤비는 단순히 사람들이 다음 휴가를 계획할 때 쓰는 플랫폼이 아니라 언제든지 방구석 랜선으로 다양한 타국 문화를 배우고 즐기며 글로벌 사고방식을 키우는 플랫폼으로 변모해가는 중입니다.

셋째, 소비자의 마음속에 브랜드 가치를 각인하고 지속가능한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전체 산업이나 기업들을 끝장내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밸류체인의 단축, 원격 근무, 사회적 거리 두기, 엄격한 소비, 업그레이드된 기술 활용이 특징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 이상 맞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을 폐기 처분할 기회가 왔다고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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