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원자가 저보다 여러 가지 조건에 잘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 대해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여기에서 일하면서 겪을 그 어떤 상황에도 저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의 한 참전 용사가 금융사 취업시 했던 말이다. 그 덕분에 그는 굴지의 MBA 프로그램 출신 경쟁자를 제치고 합격했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를 통틀어 손꼽히는 엘리트로 구성된 미 특수작전부대는 냉전 시대가 끝난 이후 미군 전략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해군의 네이비실 팀6, 육군의 델타포스 등 특수부대원들은 빠르게 학습하며 위험하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크고 작은 사이즈의 팀을 이뤄 대테러 정밀 공격부터 정보 수집에서 민간 협력을 통한 지역 정부 수립까지 다양한 작업을 수행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석좌교수이자 <Talk, Inc.>의 공동 저자인 보리스 그로이스버그와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연구원인 존 마스코는 미 특수작전부대 출신 참전 용사들의 전역 후 사회 적응을 돕는 비영리 단체 아너파운데이션에 대해 연구했다. 엘리트 특수부대 출신이 미국 기업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해 20여 명의 참전 용사와 커리어 코치를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특수부대원들의 능력과 자질이 오늘날의 불확실한 세상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발견했다.
대부분의 특수부대원은 35세에서 45세 사이에 전역한다. 미군 참전 용사 중에서도 MVP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음에도 전역 후 전술 훈련 경험, 팀워크,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직종에 종사하는 것이 오랜 현실이었다. 불과 8, 9년 전만 해도 연간 2500여 명의 전역 특수부대원 가운데 전역 전 몇 달 이내에 민간 기업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13%뿐이었다. 직장을 구했다 해도 평균 연봉은 9만 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민간 보안 업체나 비밀경호국 등의 정부 기관에 취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공중 보건 및 경제 분야에서 혼란이 발생하기 전에도, 현대의 기업은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의미하는 VUCA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기업 임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을 드디어 깨닫게 됐다.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서 고도의 훈련을 거친 특수부대원들의 자질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네이비실 대원처럼 많은 참전 용사가 취업에 성공하고 있다. VUCA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기업이 미 특수작전부대로부터 배울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위기에 더 잘 적응하는 유연한 조직
특수부대원들은 군 생활 내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것에는 능통한 사람들이다. 특수부대 내의 위계질서는 수평적이고 유연하며, 병사와 장교 사이에서도 책임의 경중에 큰 차이가 없다. 네이비실강령에는 “우리는 전우를 이끌 준비도, 앞서 이끄는 전우를 따를 준비도 돼 있다. 명령을 받지 못했을 때는 내가 책임을 지고 전우를 이끌어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훈련을 거치며 이런 정신을 함양한 덕분에 개별 임무에 가장 적합한 대원을 배치하고 부대 간 협동 능력을 높일 수 있다.
미 육군 특수부대 소속으로 이라크전 당시 ‘서지(surge)’ 작전을 이끌었던 스탠리 맥크리스털 장군은 이런 조직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특수부대 출신으로 현재는 한 기업의 임원인 크리스 퍼셀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효율성이 높은 톱다운(top-down) 관료주의적 조직 구조 대신에 일종의 네트워크 형태를 도입했습니다. 엘리트들로 이뤄진 소규모 팀의 효율성을 전체 조직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였죠. 여러 명의 리더가 여러 개의 팀을 리드하는 대신에, 개별 팀을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형태로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유연성은 미국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생활 및 업무 방식이 크게 바뀌면서 많은 기업은 조직 구조와 업무 형태를 빠르게 전환해야 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는 대면 종사자들은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미뤄둔 채 해본 적 없던 업무를 담당하게 됐고, 사내 IT팀들이 갑작스레 기업 전략의 핵심 부서로 부상했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은 현 상황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고, 회사 조직이 태생적으로 유연하지 못하다는 점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조직이든 간에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살아남는다. 세상은 항상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유연성 키우려면 팀의 전문성과 개인의 판단 능력이 필요
많은 기업은 의사결정 권한과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조직 맨 위에 집중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수부대원들은 처음 훈련 받을 때부터 이와는 정반대로 배운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전장에서 필요한 경우 생과 사를 가르는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특수부대는 때로는 두세 명에서 어떤 때는 수천 명 규모로 팀을 이뤄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정보를 정기적으로 폭넓게 공유한다.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 중령 차드 스톨리는 “팀은 첩보와 운영, 독창적인 아이디어, 비상 계획에 대해 최대한 많이 공유한다”면서 “계급이나 경험, 능력과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업데이트하며 경청한다”고 말한다.
미 특수부대와 같이 유연하고 통합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어려운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수준 높은 개인의 판단 능력이다. 특수부대에서 판단 능력은 혹독하고 위험한 훈련과 전장 경험을 통해 가르친다. 하지만 엄격한 인지 과제와 그룹 과제를 통해 선별해내기도 한다. 빠른 판단 속도와 전술적이면서 전략적인 이해력을 보여주는 그룹 과제다.
위기 상황에 잘 적응하는 리더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
네이비실 장교 출신의 롭 뉴슨은 현재는 NBA 농구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전략 및 비전 담당 부사장이다. 과거 30년의 복무 기간 동안 20건이 넘는 작전을 수행했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알카에다를 축출하기 위해 예멘군을 훈련하는 일부터 네이비실 내부 정보 부대인 특수정찰부대 팀 1 설립, 미 국방성 산하 합동 반테러 싱크탱크 근무까지 다양하다.
뉴슨처럼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는 것은 특수부대에서는 흔한 일이다. 장교가 아닌 병사로 복무한 사람들은 뉴슨처럼 전략 관련 업무를 해볼 기회는 적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대륙을 누비며 다양한 환경에서 전투를 수행했고 훈련을 통해 여러 가지 특기를 배웠다. 뉴슨은 자신의 네이비실 경력을 통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리더가 될 자질을 갈고 닦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는 종종 직접적인 권한이나 기술적 전문성이 없는 상황에서 리더 역할을 맡아야 했습니다. 신뢰와 협동에 기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팀을 이끌고 조직 내 소통에 관한 전문가가 됐어요. 세븐티식서스에서 원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광범위한 경험을 통해 뉴슨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 스스로의 지식과 전문성의 한계를 예리하게 인식하는 능력, 필요시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을 길렀다. 모두 훌륭한 위기관리 매니저가 갖춰야 할 자질이다. 그는 세븐티식서스에 부임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팀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책임자가 됐다.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지만 그는 이것이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 말다. “제가 아는 민간 업체에 취업한 네이비실 출신들 거의 모두가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책임자 역할을 맡았어요. 전혀 우연이 아니죠. 군 생활 내내 위기관리 능력을 길러온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지금 같은 상황은 이상적인 업무 환경입니다.”
소통은 신뢰를 쌓는 만능열쇠
특수부대원들은 개인 차원의 결정 능력과 팀 차원의 협동 능력을 모두 갖춤과 동시에 분명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훈련도 받는다. 특수부대원들은 지난 20년 동안 분쟁 지역에서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현지 파트너에게 필요한 훈련과 장비를 제공하며, 의심 가득한 민간인들과 합의를 도출하는 일을 맡아온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경험은 기업 환경에서도 아주 유용하다.
호주 태생의 제롬 킹은 미 해병대의 특수부대인 레이더 연대 소속으로 테러와의 전쟁 당시 북아메리카 사헬 및 마그레브 지역에서 여러 차례 작전을 수행했다. 지도자들과 협상해야 하는 일이 잦았는데 언어 차이, 문화적 장벽, 복잡한 상황을 극복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제3세계 국가에 파견돼 조언과 협조를 제공하고 현지 병력과 협동해 작전을 수행하는 경험을 통해 현재 UBS의 투자 은행 부문에서 고객과 탄탄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고 말한다.
보리스 그로이스버그는 마이클 슬린드와 함께 <Talk, Inc.>라는 책을 출간했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조직이 예측 불가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VUCA의 시대를 살아가는 때로는 대화가 최후의 보루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특수부대원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실제 업무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학위가 전부는 아니다
2009년, 사우스다코타주 휴론 출신의 18살 고졸 린지 워켄티엔은 미 해군의 정보 분석원으로 입대다. 처음에는 페르시아만의 해적선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다가 그 후에는 네이비실을 지원하기 위한 현장 첩보 활동과 보고를 담당하며 바다와 육지를 누볐다. 10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치고 그녀는 2019년에 스탠퍼드대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정보와 기술을 융합하는 분야의 커리어를 준비하는 그녀는 10년간의 해군 경력을 통해 대학 교육으로는 절대 쌓을 수 없는 스펙을 쌓았다고 말한다. “저는 뛰어난 정보 판단 능력을 갖추게 됐어요. 정보부대에서 복무하다 보면 잘못된 정보가 어떤 형태이고, 얼마나 진짜같이 보일 수 있는지, 또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가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수업 시간에는 배울 수 없는,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이죠.”
지난 수십 년 동안 채용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은 점점 더 석박사 이상의 학위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몇 번 잘못 뽑아본 뒤엔 대학원이나 학부에서 배운 건 사실 업무 현장에서도 손쉽게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반면에 판단 능력이나 감정 지능과 같은 능력은 가르치는 것은 훨씬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채용 지원자를 평가할지를 돌이켜 보기에 좋은 기회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는 지원자가 학업적으로 엘리트였는지가 아니라 실전 경험을 겪어봤는지, 그래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가르치기 어려운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수부대로부터 기업이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교훈은 바로 개인 인성이다. 인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업은 없겠지만 인성을 바탕으로 사람을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네이비실 강령 중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전장에서든 아니든 명예를 가지고 복무한다. 상황을 불문하고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만든다. 절대로 진실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의 인성과 명예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말에 책임을 진다.”
VUCA의 시대에서 기업들은 보다 창의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실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둬서는 안 된다. 조직적 유연성과 정보 공유, 커뮤니케이션, 지원자의 판단 능력에 기반한 채용,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자질, 실질적인 경험, 훌륭한 인간성에 집중해야 혼란한 시기에 잘 적응하고 성공할 수 있다.
기업뿐만아니라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절대로 남탓으로 돌리지 않고 내가 책임진다는 강한 신념이 나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상대방도 성장시킬 수 있다. 훈련은 힘들수록 실전은 쉬운 법이다. 매순간 훈련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특수부대처럼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서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슬기로운 생활 눈뜨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정)에 관한 사실 (0) | 2022.04.13 |
---|---|
모두가 알아야 할 엑셀 기능 10가지 (0) | 2021.02.21 |
나를 번아웃만드는 5가지 함정 (0) | 2021.01.24 |
발뮤다 더 토스터기 (0) | 2020.12.09 |
아이폰12미니!! (0) | 2020.12.09 |
댓글